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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던 초기의 사회학자들의 업적을 차례로 살펴봅시다.
1. 오귀스트 꽁뜨(Auguste Comte, 1789~1857)
'사회학의 창시자'라는 명예는 보통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꽁뜨에게 부여되고 있다. 그를 사회학의 창시자로 부르게 된 이유는 현대 사회학의 모든 학문적 계보들이 그로부터 비롯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사회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그것을 '사회학'이라고 명명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물론 꽁뜨가 현대사회학에 미친 영향은 무시될 수 없으나 그것의 기초는 꽁뜨 당대와 그 이후의 서로 다른 학문적 전통을 갖고 있는 많은 초기의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꽁뜨는 사회학을 사회의 진보와 질서의 법칙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법칙들을 자연과학의 방법, 즉 관찰, 실험, 그리고 비교의 방법을 적용하여 탐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사회학을 생물학에서 해부학과 생리학을 구분하듯이 사회정학(social statics)과 사회동학(social dynamics)으로 양분하였다. 여기서 사회정학은 사회체계의 구성요소들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균형·불균형 상태 또는 작용과 반작용에 관한 법칙, 즉 사회의 질서와 안정의 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를 말하며 사회동학은 진보와 변동의 문제를 탐구하는 연구분야를 말한다.
사회정학에서 그는 가족, 계급과 카스트, 그리고 도시와 촌락을 각각 생명체의 요소(element), 세포조직(tissue), 그리고 기관(organ), 즉 사회의 기본적 구성 요소들로 보고 이들이 전체사회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사회동학에서는 인간의 지적 능력은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 단계로 발전하고 사회도 이러한 지적 발전과 더불어 진보한다는 이론을 제안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학적 단계에서의 사회조직은 사제와 군대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형이상학적 단계에서는 목사와 법률가에 의해서 그리고 마지막의 실증주의적 단계에 와서는 산업경영자와 과학적 도덕가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한다.
이상에서 개관한 꽁뜨의 사회정학과 사회동학의 이론은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제기했던 사회질서와 사회변동의 문제는 사회학의 기본과제로 되어 왔다는 것에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2.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꽁뜨보다는 조금 늦으나 역시 동시대의 인물로 간주되는 스펜서 역시 사회학의 선구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영국의 석학이었다. 그는 꽁뜨와 마찬가지로 사회질서와 변동 문제 모두에 관심을 가졌으나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역점을 두었다. 그도 역시 인간사회를 유기체적 유추로 이해하여 사회는 상호의존되어 있는 여러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분들은 전체체계의 안전과 존속을 유지하는데 제가끔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용시켜 사회는 동질적인 부분들로 구성된 미분화된 형태로부터 점차 이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분화된 형태로 진화한다는 사회진화론을 내세웠다. 즉 사회는 미개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하고 미분화된 형태에서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와 같이 복잡하고 분화된 형태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서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것은 분화는 통합을 수반한다는 명제이다. 왜냐하면 분화된 사회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달라지게 되면 그만큼 그들은 상호의존적으로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펜서가 사회의 진보를 보는 주안점은 꽁뜨와는 다르다. 꽁뜨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지적 능력의 향상, 즉 관념에 있어서의 진보에 일차적 관심을 두었으나 스펜서는 그러한 정신의 상태보다는 인간의 외적 환경, 즉 사회제도와 구조의 분화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꽁뜨는 새로운 실증주의적 질서로 향한 개혁론을 내세웠으나 스펜서는 사회의 진화과정은 그 자체가 진보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떠한 개혁에 의해서도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오늘날의 많은 사회학자들은 사회가 항상 보다 좋은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어느 정도 균형상태를 유지하면서 단순한 상태로부터 복잡한 상태로, 즉 미분화된 사회로부터 분화된 사회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3.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19세기의 인물로서 사회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또 다른 한 사람은 마르크스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나 젊은 시절에는 그가 벌인 사회주의 운동 때문에 여러 나라로 추방당하여 생활하다가 런던에 정착하여 일생을 보낸 기구한 인물이다. 그는 대단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철학, 경제학, 정치학, 그리고 역사에 걸친 광범하고 다양한 방면의 저술가였다. 그는 그 자신을 사회학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그의 연구업적은 현대 사회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과학의 과업은 단순히 현실을 파악하여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사회의 균형과 진보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였던 스펜서와는 반대로 그는 사회적 갈등과 혁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경제를 사회의 하부구조, 즉 기초로 보고 그것에 의해서 정치, 법, 종교, 문예 등의 상부구조가 형성되고 발전한다는 경제결정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역사는 생산수단의 소유자들과 비소유자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단결할 수 없는 반면에 그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단결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몰락시키고 무계급사회를 이룩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사상은 하나의 종교적 신념처럼 받아들여져서 그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운동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공산주의 사회는 그가 주장하였던 사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그가 말하는 공산사회는 하나의 유토피아와 같은 무계급사회를 의미하지 오늘날의 공산주의 국가의 사회구조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의 예견은 빗나가고 경제결정론은 계속 도전을 받아 왔다. 그러나 사회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려 했던 그의 분석방법과 경제가 다른 사회 영역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학자들이 많다.
- 출처: 양춘 외 2인, 현대사회학, 민영사, 2003, 1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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